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영화 <로마> , 삶의 모양
    영화 리뷰 2019. 9. 26. 00:41

     
     
    (스포일러)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주말마다 우리 남매를 데리고 외할머니 집에 가곤 했다.
     
    우리는 물이 좋다는 동네 목욕탕에서 오랫동안 목욕을 했다.  
     
    오래된 아파트의 분리형 부엌은 계절에 따라 엄청나게 덥거나 엄청나게 추웠는데 할머니는 늘 거기서 저녁을 준비했다. 내가 베란다 문을 열라고 치면 넌 그냥 들어가 있으라고 작게 호통을 쳤다. 부엌에서 나던 화분의 흙냄새와 눅눅한 음식 냄새. 나와 동생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패밀리가 떴다' 나 '무한도전'을 보았다. 우리의 정신이 텔레비전에 팔려있다고 생각되면 할머니가 엄마가 침대에 걸터앉아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가 들을까 목소리가 낮아지는 순간들 마다 나는 안 그런 척 귀를 세웠다. 엄마는 종종 울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마음을 찌르는 것 같았다. <로마> 속 소피아 역시 자주 운다. 아이들은 소피아의 슬픔과 불안에 크게 동요한다. 소피아는 "엄마한테는 새로운 모험이 될 거야. 우리는 항상 뭉쳐야 돼, 떨어지면 안 돼."라고 말한다. 그 말은 아이들이 아닌 자신을 향한 다짐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내 기억 속 풍경은 <로마> 속 여성 커뮤니티의 형성과 작동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이는 우리가 가부장제 아래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삶의 방식을 공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지.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다.
     
    <로마>와 나의 기억 속에 모두 남성(아버지)의 자리는 없다. <로마> 속 남성성의 메타포들은 하나 같이 영화의 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삐그덕 거린다. 페르민이 알몸으로 무술을 선보이는 장면의 노골적인 성기 노출. 아이들의 아버지가 작은 차고에 차를 욱여넣는 장면. 영화의 배경에 깔리는 시대적 폭력. <로마> 속 폭력과 소음은 모두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다. 집의 대문이 닫히는 순간 '집 안'이라는 공간만큼은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 입주 가정부인 클레오는 가족들이 없을 때 조차 그 공간을 지키는 굳건하고 든든한 존재다.
     
     
     
     

     
     
     


     
     
     

    클레오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다. 클레오가 묵묵히 일을 하는 모습에는 노동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망연함이 있다. 페페와 시체 놀이를 하는 장면이 주는 서늘함이 기억에 남는다. 바람에 빨래들이 조용히 날리고 클레오는 "죽는 것도 나쁘지 않네"라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 얼마나 슬픈가. 클레오의 배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그것이 불길하게 여겨져 영화의 잔잔한 톤에 집중하기 힘들다.  클레오는 "나는 그 아이를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결말에 도달한다. 그 금기에 가까운 말을 클레오가 시원하게 내뱉고 나자 영화를 짓누르던 불길한 중압감은 조금 가벼워진다. 
     
    바다에서 서로를 끌어안는 아름다운 장면과 "우리는 정말 널 사랑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이 결말은 위태롭고 씁쓸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할머니는 병원에서 클레오의 풀네임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장면에서도 클레오는 시중을 드느라 마음 편히 텔레비전에 집중하지 못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사실 상당히 보수적이다. 클레오는 '가족 같은' 존재일 수는 있으나, 진짜 '가족'은 될 수는 없다. 어린 시절 내가 경험했던 주말의 공동체 역시 그랬다.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제 아래 고통받고 있었지만, 결국 그 자리를 지켰다. 자리를 지킨다는 말은 클레오를 떠오르게 한다. 아이들이 성장해 떠나는 순간에도 클레오는 자리를 지켰을 것이고, 그리하여 지금 이 노스텔지어의 화면 안 에 굳건하게 남아 있다. 몰아치는 파도를 향해 거침 없이 달려가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다. 클레오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몸에 부딪히는 파도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바다는 멀리서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출연자들이 노인학교 일일교사가 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뒤늦게 학교를 찾은 노인들은 모두 여성들이었다. 한 출연자가 할머님들이 열여덟 살이었을 때의 예쁜 추억을 떠올려 보자고 하자, 할머니들은 그때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매일 빨래하러 다니고. 일만 하고. 상상하지 못한 답변에 출연자들은 벙쪘고 나도 그랬다. 누군가의 열여덟살은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미디어의 눈을 통하지 않고 그 시선을 직접적으로 보기란 불가능하다. 그 자리에 모인 할머니들 조차 이제서야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이었으니까. 평생 알 수 없을 것 같은 삶이 있다. 이야기되지 않아서 모르는 삶이 있다. 그 모양은 나의 것과 많이 다르다.
     
    <로마> 역시 아름답고 훌륭한 영화임은 맞지만 결국 알폰소 감독의 시선에서 그려진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아름다움이 가능했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의 시선은 몹시 섬세하고 다정하지만 결국 어느 부분은 온전히 감독의 상상으로 만들어져야 했을 것이다. 클레오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는 없다.  그 사실이 새삼 쓸쓸하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