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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더 테이블> : 고요한 환희의 순간
    영화 리뷰 2019. 10. 7. 23:59





    영화 <더 테이블>은 테이블에 앉은 네 팀의 대화를 화면 위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어지지 않는 네 개의 이야기, 옴니버스 구성인 셈이다. 하지만 이 대화들은 마치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네 테이블, 여덟명의 삶은 분명 다르지만 동시에 닮아 있다. 김종관 감독은 우리의 삶은 모두 닮아 있다, 라는 빤한 말을 가장 잘 풀어내는 감독이 아닐까 한다. 불륜하는 남녀의 모습 속에서도 우리의 삶을 발견하게 만드는. 김종관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볼 때는 당황스러웠다. 뭔가 일어날 것 같지만 막상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인물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맴도는 듯 하다. 산책을 하며 가지는 무의미한 시간은 김종관 감독의 영화가 가지는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자신의 삶을 동떨어져서 바라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산책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산책을 하며 보는 세상은 사뭇 다를 수 밖에 없다. <최악의 하루>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남산을 아름답게 담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잠시 산책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서울이라는 치열하고 여러 감정이 들끓는 공간 속에서 고요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페르소나 속 <밤을 걷다> 역시 마찬가지다. 아예 제목을 밤을 걷다로 정하고 있으며 인물들은 끊임 없이 걷는다. 걷는 동안 인물들은 단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관한 의외의 사실을 발견을 하게
    된다. 영화는 인물의 깨달음을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음으로서 그 자리를 관객이 채우도록 한다. 인물들은, 영화의 시작에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최악의 하루>와 <밤을 걷다>는 동시에 밤이라는 시간이 가지는 기묘함을 포착한다.





    그렇다면 여기 <더테이블> 속의 인물들은 아예 멈춰 있다. 동시에 서서히 밤이라는 시간을 향해간다. 거의 유일한 동작은 차를 마시거나, 젓는 행위 뿐이다. 행동과 배경, 영화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이 이렇게 최소한으로 축소 될 수록 우리는 배우의 대사와,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이 영화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이 좋다. 가장 귀여우면서도 생활에 밀착된 것 같은 에피소드는 아마 정유미와 정준원 배우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 창석의 무례는 조금씩 정도가 심해지는 방식으로 그야말로 ‘불편함’을 안긴다. 그런 창석을 향한 실망조차 없는 유진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유진은 그냥 얼이 빠진 것 같아 보인다. 과연 저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맞는지. 그러니 그 표정에서는 단순한 ‘믿을 수 없음’ 뿐이 아닌, 복합적인 감정이 읽힌다. 여기가 개인의 경험이 투영되는 자리가 아닐까 한다. 영화는 그들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진은 자주 “나 많이 변했어” 라고 말한다. 그러니 창석은 유진의 말을 외적인 것에 한정해 받아들인다. 유진은 말한다. “왜 내 코를 기억 못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창석의 모습을 보며 유진은 조금쯤 안도를 느끼지 않았을까. 창석은 철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런 사람일 뿐이었으며, 그 둘의 연애를 아련하게 기억하고 있던 것도 자신 뿐이다. 마지막 즈음 유진의
    아쉽다, 는 말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는 다양하다. 그런데 카페를 나설 때 유진은 자신의 아픈 손가락 같았던 과거를 미련 없이 떨쳐 버린 사람처럼 오히려 홀가분해 보인다.




    가장 좋았던 것은 한예리와 김혜옥 배우가 나누는 대화였다. 둘의 나이
    차 때문에 이 자리는 애초에 영화 속 다른 만남과는 다른 결의 불편한 자리다. 그러므로 배우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더욱 절제된다. 그럼에도 감정선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이 나왔다. 영화의 톤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간 한예리 배우의 목소리 덕도 크다. 이 대화는 서로가 아주 다른 사람이라는 구분 짓기에서 시작된다. 가짜 가족을 연기하는 사람과 가짜 엄마를 고용해 결혼하는 사람 두 사람의 만마자체가
    결혼 ‘사기’를 위한 것이다. 대화 초반에는 서로가 가짜라는 사실에 대한 은근한 배척이 느껴진다. 이 사람에게 내 삶의 일부분도 하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 같은 것. 그러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것은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경계는 서서히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민호는 “우리 느림보 거북이는요,” 라는 말 하나로 잠깐이지만, 단숨에 경진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 버린다. 시간으로만 쌓을 수 있다고 믿었던 유대관계를 순간 초월해버리는 민호의 대사.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민호는 진짜 연기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때 카메라는 경진의 미묘한 표정을 잡는다. 이처럼 <더테이블>은 우리가 타인에게 별 수 없이 마음을 내어주게 되는 짧은 순간을 너무 정확하게 담아낸다. 이처럼 <더테이블>이라는 영화가 짚어내려가는 삶의 고요한 환희의 순간들은 좋아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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