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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감상 : 결국 누구에게도 무해한 사람은 없다
    책 리뷰 2019. 9. 30. 21:26

     

     

     

    최은영 작가는 여성 서사를 잘 쓰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작가는 굉장히 두꺼운 여성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집 속에도 여성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이 돋보인다. <내게 무해한 사람>과 관련된 평론 중 굉장히 공감했던 말이 있다. 우선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미래에서 과거의 한 지점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쓰여진다. 이야기가 서술 되는 '지금' , 그러니까 현재는 과거의 슬픔과 상처가 다 아문 시점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이  독자에게 무해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소설집의 제목이 가진 멜랑콜리한 노스텔지어는 왠지 이 소설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우선 '내게'를 제외해서 본다면 무해한 사람이라는 말은 지나친 거짓말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난 믿을만 한 사람이야 ! 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내게 무해한 사람' 이라는 말 역시 그렇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고 해도 서로에게 무해한 관계는 없으니까. 이 '무해한'이라는 단호한 말이 오히려 불편하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표제는 소설의 제목이 아니라 <모래로 지은 집> 속에 나오는 말이다. <모래로 지은 집>은 중편 소설로, 긴 호흡으로 세 사람의 관계를 풀어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래가 내게하는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는 그 의미 그대로 해석 돼서는 안되는 대사다. 사실 현실에서도 누가 내게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하지. 그러니 넌 무해한 사람이구나" 라고 한다면 그것은 칭찬보다는 참다참다 내게 일갈 하는 것에 가깝다. 

    <모래로 지은 집>이라는 소설을 조금 이야기 해보자면, 그속에 '무해한 사람'은 없다. 인물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이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타인의 단점만을 계속 바라본다. 그럼에도 세 사람을 묶어 놓는 것은 외로움이다. 따라서 이 관계를 묶어 놓은 것은, 자신을 향한 이기심 뿐인 것이다. 소설은 그런 관계가 얼마나 서로를 병들게 하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모래로 지은 집>은 무해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나만은 세상에 무해한 존재라고 믿었으나 사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에 가깝다. 사실 왜 책을 고르는 독자들에게 오독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내게 무해한 사람'을 표제로 한 건지 궁금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601,602>였다. 영화 <벌새>가 생각나는 소설이다. 실제로 소설의 배경은 주공 아파트이며 이 속에도 아버지와 오빠에게 학대 당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곳곳에서 이것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암시를 느낄 수 있다.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두 작품이 이렇게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서늘한 일인가. <벌새>의 오프닝 시퀀스가 생각난다. 주인공 '은희'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카메라는 점점 멀어지며 문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복도식 주공 아파트를 비춘다. 그 굳건하고 수많은 현관문 뒤에는, <벌새>의 '은희' 뿐 아니라 '효진' 역시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전반에는 직접적인 폭력에 노출된 효진이 있다. 그러나 가정 내에 물리적 폭력이 없다고 해서 '나'는 행복한가? '나'는 효진을 때리는 효진의 오빠에게 대들었다가 엄마에게 '넌 여자애야'라는 말을 들으며, 엄마가 남동생을 낳기 위해서 착하게 굴어야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이런 억압과 폭력으로 인해 두 인물은 그 시대의 '착한 딸'들이 된다. 소설은 내가 남동생이 태어났으니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마치 결말에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결말이 가지는 여운은 길다. 이 소설이 조금 더 길게 쓰여졌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과거는 시간이 흐른 뒤에 이렇게 편리하고 잔잔하게 꺼내볼 수 있는 것일까. 과거의 상처가 아물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 이야기가 회고 되는 것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일까. <지나는 밤>에는 서로에 대한 미움 조차 소거된 상태인 두 자매가 한 방에 나란히 누워 있다. 조금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두 인물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조차 너무나 지쳤지만, 자신의 외로움 때문에 사랑 받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유일한 핏줄 조차도 나를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지쳐 있다는 사실이다. 기대고 싶은 상대가 사실 나만큼 약한 사람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은 읽는 독자에게도 마음 쓸쓸해지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소설 속 인물들의 고요한 감정에 이입이 잘 되지는 않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빠른 시간안에 아픈 과거를 덤덤하게 회고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결국 누구에게도 무해한 사람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간다. 그 상처의 회복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지만 말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무해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정과 깨달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이전에, 내가 결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갈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겠지만. <모래로 지은 집>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느껴지는지. 스스로 내가 타인에게 샅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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