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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현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리뷰 : 냉소의 미덕
    책 리뷰 2019. 9. 27. 02:29

     

     

     

     

    간만에 재밌는 소설집을 읽었다. 정말로 '재미있는' 소설들이다. 낄낄 웃으면서 책장을 넘겼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유머러스하다. 어느 정도냐면 작가가 아예 작정하고 썼다고 생각되는 장면들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흔한, 가정식 백반> 속 목욕탕 풍경이다.

     

     

     

     


    종이 봉투를 쓴 남자 셋이 이모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그건 흡사 KKK단을 체포한 장면 같이 보였다. 남자들은 익숙하게 한증막 안으로 들어왔고, 카운터 이모가 외쳤다. "막에 불이 죽어서 물 뿌리러 온 거예요. 놀라지 말아요." 여자들은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갔다. 처음보는 이모들과 드라마를 보며 악녀를 욕했다.

     


     

    이 풍경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태연히 하던 일로 돌아가는 알몸의 여자들을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종이 봉투를 쓴 채 여탕으로 들어온 남자들을 KKK단에 비유하다니. 어쩐지 작가와 유머코드가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경쾌하고 발랄한 리듬을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보니 왠지 슬퍼졌다. 인물들은(대부분 여성화자) 일관된 어조를 유지하는데 어쩐지 심상한, 자신의 일을 남일보듯 하는 말투다. <좀비 아빠의 김치 찌개 조리법>에서 L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한다. "나 내일 낙태해." 그 말투는 "내일 삼겹살 구우러 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차갑고 무심한 톤이 요즘의 것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친구와 우연히 2000년대 초반의 발라드를 듣게 되었다. "미안해요 나도 울고 있어요. 보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차라리 죽고만 싶어요"라는 가사였는데 그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런 식의 감정 과잉은 어쩐지 촌스럽게 여겨지고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와 냉소만이 '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냉소는 지금 세대가 공유하는 가장 익숙한 감정이다. 그러나 분명 그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대중들에게 아주 애절하고 슬픈, 발라드였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감성을 '촌스럽다' 비웃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심지어 겪어 본적도 없는 세대를) 간절하게 그리워한다. 소위 '뉴트로' 열풍만 봐도 그렇다. 나는 그것이 지금 상실된 것이 과거에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상실된 것은 무엇일까.

    송지현 소설의 인물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스워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스워지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탐정 오소리의 사건일지-봄, 여름> 속 실종된 남편처럼, 삶을 응시하고 견디는 대신 간편하게도 이끼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예정일도 아닌데 생리가 터져, 나는 간호사에게 생리대를 하나 얻었다. 간호사는 좀비를 처음 보아 조금 놀랐다고 수줍게 말했다.  죽었다 살아난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좀비 아빠의 김치찌개 조리 법> 속 한 장면이다. 죽은 아버지가 다시 살아난 순간 응당 느껴야할 슬픔이나 분노, 기쁨이나 놀라움 따위의 감정은 없고, 때 아닌 생리가 '터질'뿐이다. 나는 간호사에게 생리대를 얻는다. 생리와 생리대를 얻는다는 행위는 심리적&물리적으로 철저하게 아버지가 배재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결국 순간 아버지 보다 생리대를 빌려주는 간호사가 '나'에게 더 친밀하게 여겨진다. 이렇듯 감정이 과열될 것 같으면 아예 전혀 상관 없는 다른 인물과 장소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속 에서 인물들은 상대를 위로하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고 심지어는 내 기분, 내 마음 역시 별로 알고 싶지 않아 한다. 타인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연인 관계는 미지근하고 가족 역시 가족이기 이전에 '타인'으로 감각되며 진실된 감정을 나눌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독자에게는 조금도 특별한 상태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 역시 지금의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감각들이 아닌가. 최근의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어른을 만난 적이 있다. 최근의 소설들이 가볍다는 듯한 어투였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런 양식은 단순히 유행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에 맞춰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형식이 아닐까. 사실 그 방식이 다를 뿐 한국 소설은 여전히 치열하다고 생각한다. 인물들은 완결된 자리에서 에필로그를 보는 관조적 태도를 유지한다. 에필로그는 결말 이후에 보충되는 장면으로 결말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송지현 작가의 인물들은 미래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스스로 결말을 이미 내어버린 사람들이다. 이는 단순히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미래를 예감해 버린 사람들인 것이다.

     

     

    박상영 작가의 추천사를 보니 이는 나만의 느끼는 부분들은 아닌 것같다. 박상영 작가는 이 소설집 속 인물들을 보면 "우울도 절망도 심지어는 들끓는 사랑조차도 찰나의 에필로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견딜수 없을 것 같았던 감정들도 견딜만하고 심지어는 조금 크게 웃을 수 있게 된다" 고 말한다. 이런 부분에서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박상영 작가와 송지현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분명 비슷한 태도나 감정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기성세대에게는 가벼운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참 치열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아무래도 나는 이 소설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닌가보다. 소설의 인물들 속에 자꾸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겹쳐보았다. 불행을 이야기하는 심상한 얼굴들. 위로를 바라지 않는 척하는 태도. 소설을 읽으며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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